긴 호흡

[04_09_03]다시 본 맥가이버

풍경소리 2004. 9. 6. 13:24

익숙한 시그널...
이걸 들으면 기억이 나겠지?
바로 맥가이버.. 오프닝이다.

내 또래의 사람이라면 누구나 기억이 날테다. 이 토요일 오후의 이 익숙한 음악
맨손으로 모든 걸 해내는 만능 마법사 맥가이버. 주먹은 못하지만, 총은 안쓰지만
어떠한 상황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헤쳐나가는 그의 위대함, 특히나 배한성씨 목소리로
'할아버지께서 말씀하셨지..'라는 예의 그 멘트를 날리면 모든 상황 끝이었다.
주변의 어떠한 도구라도 이용해서 기상천외한 해결법을 만들어내고 마는 .....
이는 '소년탐정 김전일'에서 '할아버지의 명예를 걸고'로 그대로 복제 되고..^^
(복제일지 아닐 지 몰라도 내게는 그렇게 느껴졌다.. ) 맥가이버에서 가장 기억나는
멘트가 바로 저 말이다. 나 뿐만 아니라 오늘 실험실에서 보면서 형들이랑 맥가이버에
관해 이야기를 했는데 역시 다른 사람들도 저 멘트를 가장 인상깊게 여기고 있더군.

갑자기 맥가이버가 생각난 이유는 의외로 간단했다. 인터넷을 돌아다니다 이달 말
부터인가 CNTV라는 케이블에서 맥가이버를 방영한다는 소식을 접했다. 어릴때 생각이
나 CNTV홈페이지를 뒤적거리며 방영 스케줄을 보니, 맥가이버를 보고싶은 생각이
갑자기 간절해졌다. 하지만 내 삶의 행태로 보아서는 케이블에서 하는 녀석을 볼 수
있을 리 만무했고, 또한 우리 집에서 CNTV가 나오는지 조차 불확실한 일.... 그리고
결정적으로, 단순히 9월 말까지 참기가 싫었다.^^;

혹시나 싶어서 당나귀를 뒤져보았더니, 역시나 있었다. 검색어 'Macgyver' 주루루룩..
나오는 결과들. 차근 차근 받기로 하고 1시즌 1화부터 걸어놓고 유유히 퇴근. 어제 와서
봤더니 1화가 다 받아져 있기에, 설레는 가슴을 부여잡고 재생을 해 봤더니..
익숙한 음악..... 그러나 궁시렁궁시렁....... 당나귀는 주로 유럽(독일&스페인)쪽에서
많이 쓴다. 그래서 파일들을 보면 그쪽 언어로 인코딩된 파일들이 참 많다.(프랑스어 추가)
암 생각 없이 파일을 받다보면 이상한 나라 말이 주루룩 나와 당황하게 되는 일이 꽤 있다.
그건 어디까지나 초보들이 파일 이름 제대로 확인 안하고 할 때 겪는 실수다. 하지만
난 분명히 영어제목의 파일을 받았었는데....왜... 왜... 이상한 나라말(아마 스페인
어로 추정되지만, 난 스페인어를 모른다)이 나오는 건지. 억울했다. 나름대로 조심했는데.

다시 검색을 해서 딴 녀석으로 걸어 놓았더니 , 오늘에서야 다 받아졌다. 조심스레
스킵해가며 재생시켜 보았더니, 이번에는 제대로 된 영어파일이다. 저녁때부터 할 일
안하고 실험실에서 대놓고 맥가이버를 보았다. 화질이 별로라고 생각하며 보는데.
드디어 맥가이버가 나오고 익숙하지 않은 목소리로-지금까진 배한성 아저씨 목소리로
들어왔으니-뭐라 말을 시작한다. 아,뿔,싸,... 젠장 30%도 이해가 안된다. 자막이야 당연히
없으니 찾아보지도 않았고 그래도 80년대 TV시리즈라 예전이니 말이 느려서 어느 정도
문제 없을 거라고 생각하며 그냥 본건데 이렇게 영어가 안 들릴 줄은 미처 생각 못했다.
그냥 그런데로 들을만 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정도가 좀 심하다.다시 리핏.. 여전히
안들린다. 우이씨..!!! 프렌즈만 해도 챈들러가 농담만 안하면 나름대로 들을만 했는데
-물론 자막이 있고 거의 자막으로 보긴 했지만- 그정도 수준이면 어느정도 들을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는데 슬프다. 결국 보긴 봤지만 이해도는 60~70%정도 밖에 아니되었다.
세 편을 봤는데 전체적으로 영어가 어려운 건지.. 너무 잘 안 들린다. 역시나
영어공부를 해야 하는 건가..

하지만 '괜히 봤나'라는 후회의 심정이 결정적으로 든 이유는 영어 때문이 아니었다.
어릴 때는 그렇게 열광하고 대단해 보였던 맥가이버였는데, 지금 보니 순간 순간이
헛점 투성이다. 왜 폭탄 소리만 나면 나쁜 애들은 보초 한명 아니 남기고 다 그쪽으로
가는 것인지..왜 보초들은 옷만 자기네 옷을 입으면 전혀 의심않고 다 보내주는지..
왜 무릎 반쯤되는 철망도 못 넘어 잡으러 오는 걸 포기하는 건지.. 5m앞의 맥가이버를
못 맞추는 이유는 뭔지...뭔지....뭔지....어렸을 때의 우상이 거의 3류 B급 영화의
주인공처럼 느껴지려고 한다. 과장을 하자면 그렇다는 말이지만, 예전의 우상의 모습은
아니다. 수많은 해박한 지식과 잔머리(?)로 날 감탄시켰던 맥가이버인데, 그냥 그렇게
열광하기엔 내 머리도 굵었나보다. 아니면 , 그 복잡한 화학식들을 이해하기엔 내
영어실력이 단지 딸린 건지도.....

그래도 좋다. 3류 B급 영화라도 3류 B급의 재미는 있는 거다. 어릴적 기억을 새록새록
되살려서 보는 거라면 3류라도 좋다. 어설픈 플롯에 어이없어 하기보다는 그 어이없음을
발견하는 걸 새로운 재미로 삼으면 그만이니까.내일은 4화를 봐야겠다. 5화도 받아져
있으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