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호흡

파업 그리고 월차.

풍경소리 2006. 7. 13. 23:19
hmc는 또 파업중이다.
질리지도 않게 아저씨들은 회사의 사정이란 아랑곳없이 또 열심히 임금 인상을 요구하고 있다.
그리고 회사는 질리지도 않게 버티기 모드로 들어가 있고,
개인적으로는 그냥 작년 수준에서 타협해 줬으면 좋겠지만 아저씨들도 회사들도 내 바램대로
움직이지 않고 있다.

덕분에 파업 덕분에 힘든 건 애매한 연구원들이다.
남양연구소라는 특수 공간이기 때문에, 연구원들은 노조원이지만 실질적으로 노조가 아니기 때문에
회색분자의 박쥐처럼 이쪽과 저쪽의 눈치를 모두 봐야 한다.

노조이기 때문에 파업을 하면 파업에 동참해야 하지만,
우리는 연구원이기에 파업을 한다고해서 공장처럼 깔끔하게 끝나는 게 아니다.
우선 윗라인의 -과장급 이상-의 눈치를 봐야 하고 그리고 일 자체가 우리의 일이기 때문에
우리 자신의 일의 스케줄을 관리해야 한다. 파업을 하루 하면 공장은 그냥 하루 생산물량이 줄어드는
것이지만 연구소가 파업한다고 신차 개발 스케줄이 하루 늦어지는 건 아니기에 하루 파업을 하면 그
다음날에 우리는 이틀치를 몰아 해야 하기에 더 힘들어질 수밖에 없다.

올해는 특히나 -다들 말하는 바이지만 - 유래 없이 강경한 노조의 지침 덕분에
남양에서도 실질적인 파업이 제대로 이루어지고 있다. 빨간조끼를 입은 예의 '대의원' 이라는 아저씨들이
사무실 곳곳을 돌아다니며 연구원들을 종용하고 내쫓고 일 못하게 방해를 한다. 덕분에 그 아저씨들이
뜨면 하던 일을 멈추고 다들 도망다니기 바쁘다. 그들을 피해 도망다니면 별 생각이 다든다.
나도 노조원인데 왜 내가 이렇게 도망쳐야 하는 건가, 내가 내 일 하겠다는데 왜 지들이 내 일을 못하게
말리는 것일까.....
그리고 한편에 드는 생각은
못하게 방해할 것이면 아예 제대로 첨부터 끝까지 죽치고 앉아서 못하게 막아야지 왜 잠깐 와서 방해하고
가버리면 결국 우리 연구원은 제자리로 돌아와서 자기일을 할 수밖에 없는 데, 아예 핑계대고 일을 완전히
접어버리도록 죽치고 있지 않는 것일까? 그러면 차라리 편할텐데.......

지난주에는 처음으로 출근을 막는 출근투쟁(?) 이 있었다.
덕분에 금요일에는 다들 알아서 월차를 쓰고 집에서 푹 쉬었고....
그리고 오늘 목요일, 오후에 예의 대의원 아저씨들이 또 닥쳤다.
역시나 잠깐 자리를 피하면 그것 뿐이었고 ....
오늘의 이 투쟁 덕분에 내일의 '출근투쟁'에 대한 두려움이 윗 선에서는 더 크게 느껴졌나보다.
또 다시금 지시(?)가 떨어졌다.
'왠만하면 월차 쓰고 집에서 쉬어라'

작년에 입사한 관계로 아직 난 연차가 없다.
고로...
월차라고 해봐야 이번달 포함해야 겨우 일곱개
그런데 이미 네개를 썼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쓸 수 있는 것은 세개 남짓.
늘 그렇듯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날 지 모르는 우리네 인생에 남은 월차를 하나 더 쓴다면
남은 건 이제 겨우 두개밖에 안된다.
이건 너무 불안하다.

게다가 내일 난 할 일도 없단 말이다.
물론 여권을 만들러 가도 되고 HSBC에 남은 볼일을 보러 가도 되긴 하지만,
여권을 만드려면 누나집에 들러야 할 것이고
HSBC에 들리려면 이전에 농협에서 지금 예금을 해지해야 할 것인데...
다 결국 내일 하루에 하기엔 불가능한 일.
내가 월차를 써서 얻는 득이 없는 것이다.

그리고 월차 수당.
하루에 5만원인데...!!!!
기숙사에서 뒹굴거리면 뭐하나, 여긴 밥도 아니 주는데~
차라리 회사가서 널럴히 일하며 밥도 먹고 돈도 버는 게 낫지..

이런 생각으로
월차를 안 썼다.
다만, 걱정되는 것은 무사히 출근(?) 할 수 있을까 하는 점.
병특이라고 얘기하면 다들 통과시켜 준다고 말은 하던데,
써먹어보지 않아서 불안하다.
안 먹으면 쉬었다가 나중에 출근해야 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