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호흡

아침단상.

풍경소리 2006. 1. 1. 08:30
일곱시에 깬 데에는 별다른 이유가 있는 게 아니었다. 지난해를 정리하겠다는 다짐도 없었고
새해를 계획하겠다는 의무감도 없었다. 단지 술을 먹으면 새벽에 깨는 그런 좋지못한 내 습관
때문이다. 더 잘 수 있을까하며 한 10여분 누워있다가 역시나 한번 일어난 다음에는 다시 자지
못하는 내 습관 덕분에 이렇게 자리에 앉았다.

속은 여전히 살짝 부대끼고 , 정신도 100% 말짱하다고 하기엔 무리가 있다.
어제의 술기운에 피곤함마저 섞여 있으니.
그래도 새해인데라는 생각 덕분에 이렇게 몇자 끄적이기 시작했다.

당연한 얘기겠지만 2006이란 글자는 아직 생소하다.
어제 진연이랑 박상이랑 술잔을 부ㅤㄷㅣㅊ히며 새해를 맞이하고 같이 '새해 복 많이 받아라'라고
외치곤 있었지만 -정확히 말하면 박상은 그 시간에 응가를 하고 있었다는 ㅎㅎ
놀림감 5년짜리다. ^^ -술취한 몽롱한 기분의 행동이 기억나지 않는 것처럼
새해라는 건 어제의 몽롱함마냥 실감이 나지 않는다.

올 해 어떤 일이 있을 것인지,
내가 무얼 어찌해야 할 것인지.?..

따지고보면 난 2005년도 아직 정리한 적이 없다.
그냥 머릿속으로 몇가지를 생각했을 뿐이고, 그리고 어제 애들이랑 얘기하면서 곁다리로
늘어놓았을 뿐이다. - 그넘들이랑 비슷한 건데 진연이 녀석이
몇 가지 더한 일로 많이 힘들었을 뿐-몇가지라도 끄적여 봐야 할 것 같다.

사실, 몇가지라고 하지만
실제로 따지자면 단 하나의 사건이 존재할 뿐이다.
그리고 사건이라고 해야 새롭게 닥친 것이라기보다는 예정되어 있던 일로서 충분히
대비할 시간이 있는 그런 사건이었다.

그 사건이란 , 졸업, 취업,이사,.....정도가 되겠네.
어차피 졸업이 취업을 불러오고 취업을 해서 이사를 하게 된 거지만,
각각이 내게 주는 의미는 다들 상이하기 그지 없다.

1)
먼저 취업이란 녀석부터 이야기를 시작해야 할 것 같다.
9월 12일 부로 난 직장인이 되었다ㅓ.
선배들과 주변을 보면서 자동차 회사는 피해보려고 했으나 결국 튀어봐야 벼룩이었다.
지금 내가 다니는 곳은 바로 그 회사가 되어버렸다. 취업을 위해 나름대로
LG, 삼성코닝정밀유리,한라공조, 자부연,..등등을 돌아다녔으나 결국 내가 선택한
-혹은 주변의 강요에 의해서 선택당한 -곳은 처음에 그리도 피하려고 애썼던 자동차 회사.
그리고 자동차 회사 안에서도 '선행해석'이 아닌 '시험'팀.

자동차 회사라는 것을 선택한 것에대한 후회는 없다. 확신도 없지만 기계과라는 타이틀을
그리고 NVH라는 전공을 달고 있는 나로선 사실 마땅히 다른 선택의 폭이 있는 것도 아니니,
그냥 그런 인생을 살기엔 조금 멀고 힘들더라도 감내할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한데 '시험팀'이란 건 잘 모르겠다.
대학원 때 해석에 질려서 해석팀을 아니가고 우겨서 '시험팀'으로 오긴 했는데...
여전히 헷갈린다. 내 적성엔 차라리 해석이 더 맞을 텐데, 그리고 곧 있을 조직개편에대한
소문이 내가 그렇게도 피하려고 했던 3팀으로 다시 가게되지 않나란 걱정에.

2)
아직도 며칠만 있으면 방학이 올 것 같다.
그냥 한달간 쭈욱 방구석에 쳐박혀 오락하며 놀 수 있을 것 같다.
한데 난 더이상 학생이 아니다. 내게 방학이란 녀석은 이미 평생 더 겪을 수 없는
그런 추억속의 공간이 되어버렸다.

졸업이란 것도 그리 순탄치만은 않은 기억이다.
이상한 프로젝트에 끌려가 있었기에 - 덕분에 해석에 데여 시험팀으로 죽어라고
가려고 했고- 졸업에 대한 부담이 무척 심했었다. 밤에 자리에 누우면 걱정이되어서
한참 잠못 이루던 시간들이 많았었다. '졸업할 수 있을까? ' , '어떻게 해야 하지?'
사실 막상 열심히 하는 것도 거의 없으면서 어떻게 해야 하나를 고민했다는 게 바보스런
짓이긴 하지만, 다시 대학원으로 돌아간대도 졸업이라는 것은 무척 부담스런 일이 될거다.
어떻게 얼렁뚱땅 논문을 꾸며내서 밖으로 빠져나오긴 했지만, 올해 5월과 6월은 가장
힘든 나날들이 아니었을까 싶다.

스물 여섯살이란 나이를 먹는 시간동안 여덟살 이후로 학생이라는 신분을 몸에 달고
살았었는데 -잠시 한학기 외도한 시간은 있다.-졸업이라는 것으로 지금까지 익숙하기
그지없던 생활을 벗어나야했다. 사회로의 첫발.

3)
졸업도 했고, 취업도 했으니 이제 떠나야 했다.
1999년 부터 내 생활의 근거지였던 관악구, 그리고 산 지 3년 반이 다된 낙성대의 전셋집
떠나야 했다. 이사는 내가 자주 겪던 일이 아니다. 이사라고 해봐야
기숙사 내에서 방 옮기기 였고, 기숙사 살다가 낙성대로 그냥 짐 옮겨온 게 지금까지
해 본 이사 비슷한 녀석인데 이번에는 달랐다. 누나랑 살다가 남은 가재도구며 책상까지
누구에게 '이사'라고 말한대도 절대 부끄럽지 않을 정도의 제대로 된 이사였다.
일부는 의성 우리집으로 일부는 누나집으로 그리고 일부는 쓰레기통으로.
9월의 이사는 일단 그렇게 관악구를 떠나는 것으로 마무리 되었다.

그리고 11월의 이사는 조금 달랐다.
혹자는 '포란사(寺)'라고 부르는 회사 기숙사, 절간의 조용함과 삭막함을 지닌 심산유곡
으로의 이사였다. 절에가는 것이니만큼 짐도 간소하게, 꼭 필요한 것만 챙겨서 옮긴
이사다. 옷가지랑 컴퓨터 세면도구 정도가 옮긴 물품의 전부다. 책도 꽤 들고 갔지만
아직 뜯지도 않았으니.
이 이사가 진짜 이사다. 6년 반동안의 근거지였던 서울을 벗어나서 한적하다못해
을씨년스럽기 그지 없는 경기도 시골의 기숙사로 난 근거지를 옮겨버렸다.
덕분에 평일엔 할 일이 없다. 늦게 마쳐서 약속을 못잡는거야 당연한 일이지만,
수요일 같은 경우는 정말 심심하다. 교통편이 없다는 이유하나로 ,귀찮다고 그냥 포란재에
박혀 있으면 참 난감하다. 내년엔 정말 나와야겠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밖으로 나온다고 해도 별 다른 게 있을런지는 모르겠지만..

그 다음의 일들이라면 뭐가 있을까?.

졸업하기 전 8월에 중국여행도 한번 다녀왔었다.

올 해에'도' 역시나 '여자문제'라는 건 전혀 없었고.

부모님들이 여전히 불안하긴 하지만 수면위로 떠오른 문제는 보이질 않고...

역시나 굵직한 것이 확실히 강하니까 다른 일들은 묻혀서 함부로 얼굴을 내밀지 못하고 있군.
그럼 이 정도에서....

이제 2006년을 생각할 시간인데....
어떤 한해가 될까?.
조금 더 생각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