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호흡

나흘째 - 드디어 팀배정

풍경소리 2005. 9. 15. 21:28
지난 사흘의 일상은 동일했다.
지금까지의 내 생활과는 전혀 다르게 아침 일찍 일어나
누나가 차려주는 밥을 대충 먹고
출근버스를 탄다. 겨우 시작인지라 아직도 출근버스에서 잠이 드는 것이
그리 편하지 않다. 목을 어떻게 둬야 할 지 허리 라인을 어떻게 배치해야
편안한 숙면이 되는지 익히지 못했다. 피곤에 취한 몸이지만 아직 생각은
죽지 않았는지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 버스의 흔들림 속에서 쉬이 잠들지는 못한다.

그러기를 한시간 여 반복하면 어느 새 남양의 구정문에 도착한다.
게이트를 통과해서 우리들만의 골방-회의실-에 들어간다.
그리곤 아무것도 없다. 우리를 위해 배정된 역할도 기대도 없다.
그저 방치상태. 밥 먹을 때면 얼굴을 빼꼼내밀어서 식권 대용으로 쓸 사원증을
달라는 애완동물의 밥을 갈구하는 눈빛을 보내는 것이 다이다. 퇴근 시간이
다가오면 잠시라도 더 빨리 골방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10분 전부터 이미 복장 단정히
하고 문만 열면 되도록 문 앞에서 대기하고 있다.

다섯명이 입사해서 두명은 자기 갈 길을 가고 -난데 없이 전주로 내려가야 했던
그 동기에겐 애도의 안부를- 세 명이서 좁은 회의실 에 갖혀서 할 일은 정말 없다.
가끔씩 정말 가끔씩 잠깐 얼굴을 비치는 대리에게 희망 혹은 불안 섞인 한 마디를
던져보지만 그가 대답해주는 정보는 거의 없다. 무성의하게 그냥 사무적인 답변만
해 줄 뿐 우리가 진정으로 궁금해하는 것은 늘 저 너머 알 수 없는 곳에 있을 뿐...
정보도 없고 할 일도 없이 책을 읽다가 잠을 청하다가 셋이서 잡담을 하다가....
그게 다였다.

다만 나로서는 좀 더 다행인 것은 같은 건물 복도 반대편에 내가 아는 사람이 둘이나
있다는 점이었다. 진연이가 다행히 선행팀에 있었고, 준욱이형 역시 선행팀에 있었기에
진연이를 하루에 두번 정도 불러내서 서로 잡담을 할 수 있는 게 나에게는 나름대로
큰 축복이었다. 정말 지루할 적에 그녀석을 불러내면-혹은 그녀석이 잠이 온다면서
나를 불러내는 경우도 꽤 있다-십분 이십분동안 잡담하며 보내는 시간은 축복받은
순간이었다. 친구가 없는 나머지 두명에게 미안하긴 했으나.. 어쩌겠는가..

이렇게 나흘이 지났다.
대리는 오늘에는 결판이 날 것을 암시 했고- 사실 이건 사흘 내내 '오늘은 될거다'
를 연발한 것에 지나지 않지만- 우리도 오늘은 될 거라고 굳게 믿고 있었다.
왜냐면 내일이 금요일이기에.. 그리고 곧바로 추석이 오기에 추석 전에는 결정이
될 거란 사실은 누가 말해주지 않아도 당연히 느끼고 있었기에.
하지만 불안감은 더욱 가중되었다. 이렇게 저렇게 알아낸 정보에의하면 시험 1팀이
울산에서 올해말까지 남양으로 이전하는 것은 확실해 보였고 시험 1팀에 대한 정보도
상당히 긍정적이었기에 차라리 1팀으로 가는 것이 되려 더 좋지 않을까란 생각까지
들 정도였는데 대리는 난 남양행이란 느낌을 강하게 주고 있었다. 그렇다면 시험 3팀?
3팀에 대한 불안감이 다시금 드는 거였다.

3팀은 결코 가고 싶지 않았는데..
3팀은 절대 피하고 싶었는데..
결국 피하고 피한 것이 3팀이 되는 건가 란 생각에 난 몸을 떨어야 했다.
불안감을 참을 수 없어서 다시 대리에게 물어 보았지만..
충분히 고려했다는 대답. 말 그대로 해석하기 나름인 대답을 해 주었기에
불안감은 전혀 가시지 않고 ...
애꿎은 시간만 흘러가고 있었다.

정말 불안했다.
3팀은 피하고 싶었다.
과다한 업무량에 대한 소문과
대학원에서 이리저리 얽힌 일 때문에 그 사람들을 다시 보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이런 마음에서 비롯된 멀리함 때문에 거의 난 과대망상증 환자처럼
가기 싫은 감정이 더욱더 증폭되어 거의 아노미 상황에 가까울 정도로 3팀을 싫어하게
된 거다. 게다가 면담 시간에 이민섭 부장과.. 내 본심을 안 밝히려고 최대한
애매하게 덜 떨어진 인간처럼 나를 표현했기에 그 뒤에 그 사람들 밑으로 들어가면
정말 얄궂은 상황이 벌어질 것만 같았다.

다행히도
신은 나를 버리지 않았나보다.
5팀으로 결정되었다.
....

막상 결정되고 나니 1팀이 아쉽다는 생각이 드는 건 당연한 사람의 심리일까?

그래도 기뻐하련다 일단은.
일단은...
최소한 내일 양복을 또 입진 않아도 된다는 사실에..
이글루스 가든 - 졸업 & 취업 & 연애 ^^